영화 더 플랫폼, 충격적인 수직 구조의 감옥과 인간성의 시험
개요: SF, 스릴러, 스페인
감독: 가더 카츠테루-우루샤
출연: 이반 마사구에(고렝 역), 조리온 에귈레오(트리마가시 역), 안토니오 산 후안(이모구리 역),
에밀리오 부알레(바하랏 역)
상영시간: 94분
개봉일: 2020. 5. 13.
평점: 7.75점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수직 구조의 감옥 플랫폼
이 영화의 핵심 소재는 수직 구조의 감옥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0층부터 시작하여 지하로 1층, 2층, 3층... 이 끝이 모르게 이어진 구조이다. 각 층에는 2명의 사람이 있고 방의 가운데 부분이 뚫려 이어져 있다.
또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층은 30일마다 랜덤으로 변경된다. 이 구조에서 독특한 부분은 식사를 제공할 때 0층에서 감옥의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 방 가운데 뚫린 부분으로 상을 내려보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층의 사람들은 위층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즉, 위층의 죄수들이 배가 부를수록 아래층 사람들이 굶주리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고렝과 트리마가시는 같은 층(48층)의 방을 쓰는 룸메이트이다. 트리마가시는 감옥에 들어온 지 1년, 고렝은 처음 들어온 신입이다.
고렝은 트리마가시에게 감옥의 시스템에 대해 물어보지만 트리마가시는 귀찮은 듯한 모습으로 고렝이 주는 정보만큼만 알려주는 등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고렝은 감옥에 6개월만 있으면 학위를 하나 준다는 말을 듣고 자원하여 들어왔으며, 트리마가시는 화가 나 창밖으로 던진 TV에 지나가는 불법체류자가 의도지 않게 사망하여 들어오게 되었다.
감옥에 들어올 때 하나의 물건을 선택하여 가져올 수 있는데 고렝은 책, 트리마가시는 칼을 들고 왔다. 고렝은 100층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황을 알고 각 층 사람들이 음식을 분배하여 먹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자 한다.
하지만 트리마가시는 고랭의 행동을 비웃으며 절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 고렝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며 시간이 지나간다.
낮은 층과 높은 층을 경험하다
48층에서의 30일이 지나고 다음에 배정된 층은 171층이다. 고렝은 트리마가시에 의해 몸이 묶인 채 깨어난다. 트리마가시는 171층에서 음식을 먹지 못한 채 오래 지나면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이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에 '먹히느니 먹는 게 낫다'라는 판단을 하여 고렝을 묶어놓은 채 생활을 한다.
시간이 지나 트리마가시가 고랭의 살점을 조금 잘라내어 먹으려는 순간, 위층에서 자신의 아이를 찾으러 음식상을 타고 내려가는 여자가 트리마가시를 죽여 도움을 준다. 주인공은 트리마가시의 사체를 먹으며 30일을 버티고 33층에서 깨어난다.
33층 고렝의 새 룸메이트 이모구리는 람세스라는 강아지를 데리고 감옥에 들어왔다. 이모구리는 8년 동안 감옥에 사람을 보내는 일을 한 사람으로 암 투병 끝에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감옥에 자원하여 들어오게 되었다.
자발적인 연대의식을 꿈꿔서 아래층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분하려 노력하지만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데려온 강아지도 사망하며 삶의 의욕이 꺾인다.
30일이 지난 후 이모구리는 202층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202층에서 홀로 지내며 트리마가시와 이모구리의 환영이 고렝을 괴롭힌다. 고렝은 정신적으로 힘듦을 느끼며 이모구리의 시체를 먹으며 버틴다.
시간이 지나 6층에서 깨어난 고렝은 바하랏 이라는 룸메이트를 만난다. 밧줄을 선택하여 들어온 바하랏은 위로 올라가서 플랫폼을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지만 위층 사람들의 도움이 없어 실패하게 된다.
그 후 플랫폼의 변화를 꾀하고 아래층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고렝과 바하랏은 음식상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50층 이후의 사람들에게 배식을 하며 내려가는 도중 죄수들과의 다툼으로 부상을 입고, 지쳐있는 상태에서 333층에서 살아있는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이 둘은 아이가 0층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라고 판단하여 음식상을 태워 올려보내며 영화가 끝난다.
인간성에 대한 고찰
인간성이란 인간다움, 즉, 인간을 인간답도록 하게 하는 본질을 뜻한다. 르네상스인은 만능에서 인간성을, 칸트는 이성적, 도덕적 인간에서 인간성을, 영국의 경험주의자는 감정 속에서 인간성을 찾으려 했다.
이처럼 인간성은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바뀌어 왔다. 이 영화에서 극단적인 수직구조를 배경으로 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성이 없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안의 상황이라면 인간성을 어떻게 규정하는 게 맞을지 생각해 볼 과제인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는 고렝, 이모구리, 바하랏과 같은 등장인물처럼 변화를 꾀하거나 트리마가시처럼 아래층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긴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살다가 아래층에 걸려 음식을 먹지 못하면 죽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잔인하고 자극적인 소재가 들어있으며 장소가 한정되어 다이내믹한 변화가 일어나는 영화는 아니지만 생각해 볼 만한 소재가 많은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인상 깊은 대사
세상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꼭대기에 있는 자, 바닥에 있는 자, 추락하는 자 (영화 도입부)
아래층 사람들한테 말 걸지 마 아래에 있으니까. 위층 사람들에게도 말 걸지 마 대답 안 할 거야 위에 있으니까. (트리마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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